poet

김소연, 편향나무

Danao 2019. 1. 2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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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원한 적 없는 이 세계에서
백년은 살아야겠지
미치지 않고서 그럴 자신이 있겠니

'용기'라는 말을 자주 쓰는 자는 모두 비겁한 사람이 되었다
내 생각을 나보다 더 잘 읽는 자는 모두 적이 되어 잇었다
아침마다 나는 고쳐 말하고만 싶었고

작년의 감이 새까맣게 매달려 있는 사월의 감나무 아래
빨랫줄을 꽉 물고 있는 빨래집게들을
주차된 차 아래에서 낮잠 자는 길냥이들을
둥에 난 흉터를
아까 본 그 사람을
거북이처럼 걷던 그 사람을

거북이는 등이 있어서 다행이었고
같은 맥락에서
거북이 등 뒤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다행이었고

배낭을 메고 내가 나를 거듭 떠났다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으로 가서

얼굴을 버리고 돌아와 얌전하게
생활을 거머쥐는 나에게로 벚꽃잎들이 달라붙을 때
'얇이'라는 말을 깊이 생각했다

살아야겠지
자기자신이 자기자신에게 가장 거대한 흉터라는 걸 알아채려면
그렇게 해서 진짜로 미쳐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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