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정보]
- 해당계열 : 인문계열 1, 문항 1
- 핵심개념 및 용어 : 분석적 이해, 비판적 이해
3.예상 소요시간 : 30분 / 전체 100분
[제시문]
[가]
키니코스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금욕적인 태도를 추구하며 세속의 가치를 부정했던 디오게네스는 참된 가치와 거짓 가치의 차이만이 유일한 구분이고 다른 구분은 쓸데없다고 여겨서, 어디 출신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 같은 인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키니코스학파의 세계 시민주의는 정치적 공동체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관습이나 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적 공동체를 추구한 것이었다. 이들은 세계 시민의 개념에 해당하는 우주적 국가의 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인류를 세계 시민으로 전향시키고자 했다. 키니코스학파의 세계 시민주의는 이후 모든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적 원리에 의해 구성된 우주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스토아학파로 이어졌다.
키니코스학파 철학의 영향을 받은 스토아 철학의 창시자 제논은 온 인류가 동료 시민이 며 기존의 공동체를 넘어서 하나의 삶의 방식과 질서로 다스려지는 세계 공동체를 지향했 다. 초기 스토아학파는 우주 혹은 자연에 일치하는 삶이 기존의 정치 체제인 폴리스(polis) 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인류의 공동선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자신 이 속한 폴리스든 다른 폴리스든 어느 곳에서라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초기 스토아학파는 세계 시민권을 우주 혹은 자연의 법칙에 일치해서 사는 자에게 한정하고, 인류 전체의 유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했다.
하지만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려는 로마 제국과 코스모폴리스* 자체를 동일시한 로마 시대의 스토아학파는 로마의 시민권을 이성을 가진 온 인류로 확장하면서 로마에 대한 소속감 내지 애국심을 강조했다. 이를 동심원의 비유를 통해 표현한 스토아학파 철학자 히 에로클레스는 세계 시민이 되기 위해 지역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보 았다. 그는 우리에게 지역적 소속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연속적인 동 심원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내부의 원은 우 리 자신의 마음이고, 두 번째 원이 직계 가족이며, 세 번째 원은 친족, 네 번째 원은 이웃 과 동료 시민, 이웃한 도시의 주민 등이다. 그리고 내부의 모든 원을 포함하는 맨 마지막 원은 인류 일반이다. 이때 우리의 목표는 동심원들이 가능한 한 중심을 향해 가깝게 모이 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 번째 원에 속하는 사람들이 마치 두 번째 원에 속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들을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 코스모폴리스: 우주 전체를 하나의 폴리스로 간주하여 지칭한 용어.
[나]
청나라 황제 옹정제가 만주족의 통치에 저항한 한족 지식인 증정(曾靜)을 다음과 같이 신문(訊問)하였다.
“너는 역모를 꾀한 서신에서 말하기를, ‘하늘이 사람과 동물을 낳을 때, 천리(天理)에 서는 하나지만 기질(氣質)에 따라 구별이 있게 하였다. 중원에서 태어나 올바름을 얻고서 음양의 덕이 합해지면 사람이 되고, 사방의 변경에서 태어나 마음이 치우치고 음험하여 간사하고 올바르지 않으면 금수(禽獸)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금수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대개 거주하는 곳이 아주 멀고 언어와 문자가 중원과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원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변경 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사람이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사람과 금수는 모두 천지 가운데 존재하여 똑같이 음양의 기운을 부여받는데, 그중에 영명하고 빼어난 것을 얻으면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이상한 것을 얻으면 금수가 된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인의(仁義)를 알지 만, 금수에게는 윤리(倫理)가 없는 것이다. 어찌 태어난 곳이 중원인지 변경인지를 근거로 사람과 금수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만약 너의 말대로라면, 중원은 음양이 화합하는 땅이라 오직 인간만 태어나야 할 것이며, 그 공간에 금수가 살아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어찌 중원의 땅 곳곳에 사람이 금수와 뒤섞여 함께 거주하며, 금수의 무리가 인류보다 훨씬 많은 것인가? 더구나 인류 가운데 어쩜 너처럼 무엄하게 반역을 꾀하여 천량(天良)을 상실하고 인륜을 절멸시킨 금수만도 못 한 물건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논제 분석]
[문항 1]
제시문 [가]에 나타난 세계 시민주의의 변화를 설명하고, 제시문 [나]의 옹정제의 관점에서
제시문 [가]의 히에로클레스의 주장을 비판하시오. [30점]
[출제 의도]
이 문항은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진술로 이루어진 제시문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구체적인 현실에 적절하게 적용하여 비판하는 능력을 평가한다. 정확한 이해력과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이를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여 분석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출제하였다.
[문항 해설]
제시문 [가]는 EBS 수능특강 「독서」에 수록된 세계 시민주의에 관한 글이다. 고대 그리스의 디오게네스로부터 시작된 세계 시민주의는 초기 스토아학파를 거쳐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시민으로서 인류 전체를 위한 보편적 가치를 논하였다. 로마 시대의 스토아학파 철학자 히에로클레스는 로마에 대한 소속감을 강조하면서 연속적인 동심원 비유를 통해 가장 안쪽에 위치한 로마의 시민권자를 가장 바깥쪽의 인류 일반으로 확장하였다.
제시문 [나]는 「동아시아사」 4종 교과서에 모두 수록된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옹정제는 금수로 취급받는 오랑캐라 하더라도 천명을 받고 인의를 알면 중원을 통치할 수 있다는 논리로 만주족의 중원 지배를 합리화하였다. 특히 태어난 곳을 근거로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한족 지식인의 편협한 인간관을 비판하고, 중심과 주변의 차별을 부정하였다.
본 문항에서는 우선 제시문 [가]에 제시된 세계 시민주의 관점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특징과 변화를 보이는지 분석하여 정리해야 한다. 이어 제시문 [나]에 나타난 편협한 인간관의 배타성을 분석하고, 이를 제시문 [가]에 나타난 세계 시민주의와 비판적으로 대비시킬 수 있어야 완성도 높은 답안을 작성할 수 있다. 특히 제시문 [가]의 히에로클레스가 제시한 연속적인 동심원이 드러내는 중심과 주변의 구별이라는 모순을 논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분석 능력이 필요하다.
[예시 답안]
제시문 [가]에 나타난 세계 시민주의는 크게 세 단계의 변화를 거친다. 우선 키니코스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주장한 세계 시민주의는 기존의 공동체나 관습을 초월하여 인간 을 모두 세계 시민으로서 동등한 존재로 인식했다. 이어 초기 스토아학파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이 동료 시민으로서 기존의 공동체인 폴리스를 넘어서 인류 전체의 공동선을 추구했다. 마지막으로 로마 시대의 스토아학파는 로마에 대한 소속감과 애국심을 강조하며, 로마의 시민권을 온 인류로 확장하였다.
제시문 [나]의 옹정제는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태어난 지역으로만 구별하는 편협한 인간관을 통렬히 비판한다. 태어난 곳이 중원이라고 해서 모두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변경에서 태어난 존재도 인의를 알고 양심을 가지면 동등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옹정제의 관점에서 사람은 태어난 곳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차별되는 올바른 마음을 가진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이다.
히에로클레스는 로마 제국을 코스모폴리스, 즉 우주 전체와 동일시하면서 로마에 대한 소속감을 세계 시민의 기본 조건으로 전제한다. 히에로클레스가 제시한 연속적인 동심원 비유에서도 자신과 가까운 내부의 원과 먼 거리에 있는 외부의 원을 따로 구별하면서 결과적으로 중심과 주변의 거리가 발생하게 된다. 이는 태어난 곳을 기준으로 사람과 동물 을 구별한 한족 지식인 증정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 자신과 멀고 가까움을 기준으로 세계를 차별적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을 동일한 존재로 인식한 옹정제의 관점에서 히에로클레스의 주장은 로마의 시민을 세계 인류 가운데 가장 안쪽의 동심원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결코 보편적일 수 없다.
[일반 정보]
- 해당계열 : 인문계열 1, 문항 2
- 핵심개념 및 용어 : 교양독서, 비판적 이해, 분석적 이해
3.예상 소요시간 : 30분 / 전체 100분
[제시문]
[다]
A quality of the human brain is known as induction, how something positive generates a contrasting negative image in our mind. This is most obvious in our visual system. When we see some color-red or black, for instance-it tends to intensify our perception of the opposite color around us, in this case, green or white. As we look at the red object, we often can see a green halo* forming around it. In general, the mind operates by contrasts. We are able to formulate concepts about something by becoming aware of its opposite. The brain is continually dredging up** these contrasts. What this means is that whenever we see or imagine something, our minds cannot help but see or imagine the opposite. If we are forbidden by our culture to think a particular thought or entertain a particular desire, that taboo instantly brings to mind the very thing we are forbidden. Every no sparks a corresponding yes. We cannot control this vacillation*** in the mind between contrasts. This predisposes**** us to think about and then desire exactly what we do not have.
* halo 후광 ** dredge up ~을 떠올리다 *** vacillation 동요, 흔들림 **** predispose ~한 경향을 띠게하다
[라]
들뢰즈는 이미지의 개념을 운동 개념과 관련지어 인식론적으로 확장하고, 영화를 새로운 인식의 매개체로 재해석하였다. 그는 영화에서의 카메라 역할에 주목했다. 카메라로 대표되 는 영화적 기술은 인간의 지각 작용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이미지의 일부만 취할 수밖에 없 으나, 인간의 지각처럼 어떤 특정한 시점이나 의도에 구속되지 않아 자유로우며 자연적 지각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으로 운동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들뢰즈는 우리가 파악할 수 없 는 대상의 실재를 잠재성으로 보고, 이를 현실성과 대립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영화는 스크 린을 통해 이미지의 움직임을 보여 줌으로써 시각적 조건에 관계없는 운동의 이미지를 보여 준다. 카메라 자체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운동의 흐름이 더이상 제한된 시각에 고정되지 않고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영화를 인간의 지각에 감지되지 않는 잠재성의 일부인 미세한 실재들을 포착해 내는 새로운 사유의 길로 보았다.
들뢰즈가 영화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카메라는 기계의 눈이기 때문에 현실에 무관심하다. 따라서 카메라를 통한 현실의 지각은 우리 눈으로 세상을 지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실에 가깝다. 물론 그는 우리의 눈과 마찬가지로, 어떤 카메라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카메라도 결국 우리의 시각 구조를 모델로 만든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카메라는 인간의 시각 구조와 닮았음에도 개념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새로운 이미지로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시각이 수용할 수 있는 지각의 궁극적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카메라는 인간의 눈과 닮았지만 인간의 눈과 달리 기존의 개념이나 관습 혹은 신체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이 때문에 인간의 눈으로 쉽게 지각할 수 없는, 현실의 새로운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들뢰즈는 카메라의 눈이 인간의 눈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들뢰즈는 영화가 인간의 눈이 아닌 카메라라는 기계의 눈에 담긴 지각을 바탕으로 한다 는 점을 포착했다. 그는 영화가 표상, 관습에 의해 지배되었던 우리의 사고에 새로운 충격 을 던질 수 있다고 믿었고,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밝혀낸 셈이다. 결국 들뢰즈는 영화가 인간의 시각을 극복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고정 관념을 탈피하고 새로운 사유를 창조할 수 있는 철학적 위상을 지닌 예술이라고 본 것이다.
[논제 분석]
[문항 2]
제시문 [다]의‘induction’의 의미를 설명하고, 인지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제시문 [다]와 제시문 [라]를 비교하시오. [30점]
[출제 의도]
이 문항은 현실에 대한 인간의 인지과정이라는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두 글을 읽고 두 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지를 묻는다. 이 문항은 인간의 인지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사실 파악 능력과 글의 논리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사고를 요구한다.
[문항 해설]
이 문항은 현실에 대한 인간의 인지 과정이라는 유사한 주제를 다루는 두 글을 읽고 두 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지를 묻는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제시문 [다]의 영어 구문과 두뇌활동의 본질로 규정되고 있는 ‘induction’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다]의 두뇌활동 중심의 인지과정과 제시문 [라]에서 언급된 새로운 사유의 길로서의 영화와 카메라에 대한 들뢰즈의 주장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해야 한다.
제시문 [다]는 EBS 2021학년도 수능 연계교재 수능특강 영어영역 「영어독해연습」에서 발췌하였다. 이 글은 인간의 두뇌활동이 현실과 반대되는 여러 가능성을 끌어냄으로써 사고를 하도록 선천적으로 작동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빨간색 물체를 볼 때 보색인 녹색이 그 주변에 같이 보이거나, 사회의 금기 때문에 오히려 금기시되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주장함으로써 인지활동이 수동적인 학습이 아닌 적극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제시문 [라]는 EBS 2024학년도 수능 연계교재 수능특강 국어영역 「독서」에서 발췌하였다. 이 글은 들뢰즈가 이론화 작업을 통해서 의도한 영화에 대한 인식론적인 확대가 현실의 개념이나 관념, 심지어 신체적인 구속을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제시한다. 즉,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의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의 지각에 감지되지 않는 미세한 실재들을 포착할 수 있는 영화의 카메라를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사유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문항은 인간의 인지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사실 파악 능력과 글의 논리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사고를 요구한다.
[예시 답안]
제시문 [다]의 ‘induction’(유도/이끌어냄)이란 인간의 두뇌가 작동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수용하기보다 그것과 대조되는, 또는 반대되는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고 추구하게 만드는 인지 과정이다. 이것은 우리가 빨간색의 물체를 보는, 즉 시각을 통한 인지 활동은 물론 사회적 금기에 반발하는 예로도 나타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전반적인 인지 과정을 의미한다.
제시문 [다]는 두뇌활동의 특징으로 현실로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대조 또는 반대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추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글은 ‘induction’으로 표현된 두뇌활동의 영향이 시각을 통한 인지 과정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대상에 대한 개념화, 또는 사회적 금기에 대한 즉각적인 거부 행동 등에도 나타나며, 따라서 우리의 인지 과정은 선천적이라고 주장한다.
제시문 [라]는 들뢰즈가 새로운 인식의 매개체라는 철학적 지위를 부여한 영화의 카메라가 비록 인간의 눈이라는 시각기관을 따라 만든 것이지만, 개념, 관습, 신체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의 지각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드러나는 대상의 실재를 더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다]와 [라] 모두 인지 과정을 고찰하면서, 현실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함을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즉, 제시문 [다]는 두뇌활동을 통해서 현실과는 대조적인 또는 반대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추구한다고 주장하고, 제시문 [라]는 들뢰즈의 예를 통해 현실성과 대립되는 대상의 실재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영화의 카메라처럼 기존의 개념, 관습, 신체적인 제약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제시문 [다]는 우리를 현실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두 뇌라는 선천적인 기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현실과는 다른 가능성을 꿈꾸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타고난 인지 과정이고 그 결과라는 주장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제시문 [라]는 들뢰즈의 주장처럼 인지 과정은 현실 속 기존의 개념, 관습 또는 신체의 구속 때문에 대상의 미세한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영화의 카메라도 대상의 실재를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기존의 개념, 관습 또는 신체의 구속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의 지각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미세한 움직임을 통해 드러나는 대상의 실재를 더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시각을 통해 성취할 수도 있는 지각의 궁극적인 가능성을 오히려 영화의 카메라가 실현하는 것이고, 현실의 개념, 관습 심지어 신체적 구속으로부터 탈피해야 우리에게 새로운 사유의 길이 열린다는 주장이다.
[일반 정보]
- 해당계열 : 인문계열 1, 문항 3
- 핵심개념 및 용어 : 분석적 이해, 비판적 이해, 실존주의
3.예상 소요시간 : 40분 / 전체 100분
[제시문]
[마]
‘나’가 가질 수 있는 기본적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 그리고 ‘나’와 ‘그것’의 관계뿐이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주체와 객체의 관계이자 차등 의 관계이지만, ‘나’와 ‘너’의 관계는 주체와 주체의 동격 관계이며, 두 유일 무이한 존재들의 대등 관계이다. (중략)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나’를 아는 것은 아니며, 인간을 아는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이 동일한 성질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지식은 ‘그것’에 대한 지식이고, 그것은 이론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객관적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지식이다. 그러나 ‘나’에 대한 지식은 객관적일 수 없으며, 좁은 의미로 ‘지식’이 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식 이상이요, 지식이 일으킬 수 없는 인격 전체가 동원된 힘과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진정한 ‘나’가 될 수 있는 것은 ‘너’가 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있기 때문이요, 그 사람과 ‘나’와 ‘너’의 관계를 맺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존 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나’에게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진정한 관 계는 형성될 수 없다.
[바]
무신론자였던 사르트르는 인간은 사물과 달리 그 본질이나 목적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연필은 처음부터 ‘쓴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무엇인가 쓴다는 것은 연필의 본질이므로, 연필의 존재는 그 본질로부터 나온다. 즉 사물은 본질이 그 존재에 선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물과 다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신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라는 기존의 통념을 거부하면서, 인간은 우연히 이 세계에 내던져진 채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고 보았다. 사르트르는 이 세계의 모든 존재를 ‘의식’의 유무를 기준으로 의식이 없는 ‘사물 존재’ 와 의식이 있는 ‘인간 존재’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사물 존재’를 ‘즉자 존재 (Being in itself)’로, 인간 존재를 ‘대자 존재(Being for itself)’로 각각 명명하였다. 여기서 즉자 존재는 일상의 사물들처럼 자기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 계속 그것인 상태로 남아 있다. 반면에 대자 존재는 자기의식을 가진 존재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여 스스로를 바라볼 수도 있고, 매 순간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또한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타자와 연관된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내가 주체적 의식을 지니고 살아가듯이 타자도 주체적 의식을 지니고 있어서, 내가 아무리 주체성을 지닌 존재라 하더라도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은 나를 즉자 존재 럼 객체화하여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으로 규 정되는 인간의 모습을 일컬어 ‘대타 존재(Being for others)’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렇게 자신이 타자의 시선에 노출되더라도 자신의 행위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선택에 따라 행동하며 그것을 타자가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써 타자를 자신의 선택 속에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타자의 시선을 두려워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 계속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
사상 최대의 폭설로 완전히 마비되었던 도로와 거리가 경찰과 군부대, 시민들의 도움으 로 조금씩 숨통을 터가고 있습니다. (중략)
평소 걸음으로 십 분이면 왔을 곳을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익숙하지 않은 노동에 남자는 금세 지쳤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이런 속도로 언제쯤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몸을 움직이면서 흘린 땀 때문에 셔츠가, 허리까지 쌓인 눈 때문에 구두와 바지, 속옷이 다 젖었다. 남자의 삽은 점점 느려졌고 눈이 쌓인 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중략)
전화벨은 기막힌 타이밍에 울렸다. 발신 번호를 확인한 남자가 인상을 확 구겼다.
“네, 부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먼저 안부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 합니다.”
“김 대리, 내가 지금 그런 인사 받자고 전화했는지 알아? 너 지금 어디야? 우리 사업부 에서 너만 출근 안 했어.”
“네? …… 아, 지금 가는 중입니다. 눈 때문에 현관문이 안 열려서…….”
“야, 너 사는 데만 눈 왔냐? 지금 세상천지가 눈이야.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며칠 시간 을 줬으면 미리미리 눈도 치워 놓고 출근 준비를 해야 될 거 아니야. 넌 그러니까 안되는 거야. 새끼가 눈치도 없지, 근성도 없지, 네 나이에 대리 달고 있는 거 쪽팔리지도 않냐? 새해부터는 잘해 보겠다며. 이 새끼는 맨날 술 마실 때만 열심히 한다 그러지.회사가 우습냐? 먹고사는 게 우스워?”
부장은 속사포처럼 퍼부어 댔다. 아닙니다, 무섭습니다……라는 말 대신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거의 다 왔으며 무조건 빨리 가겠다는 거짓말이었다. 삽으로 눈이 아니라 머 릿속을 퍼낸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자는 시간을 확인했다. 부장이 제시한 데드라인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중략)
빨리 안 오고 뭐해. 과장의 문자가 도착했다. 어느새 두 시였다. 남자는 삽을 쥐고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눈을 치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하지만 그만큼 빨리 지쳤다. 눈 속에 앉아서 쉬고 있으면 드러누워서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 순간에는 눈이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공원에 있는 나무 벤치 같았다. 심지어 솜이불처럼 포근하게 느껴져서 안으로 한없이 파고들어 가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남자는 쭈그리고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한기 때문에 경기하듯 깨어났다. (중략)
맞은편에 불 꺼진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간판을 보자 온장고에 든 따뜻한 캔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얼마 전까지 일상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손이 닿지 않는 저 눈 밑에 파 묻혀 버렸다.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편의점 앞에는 남자의 키만 한 눈사람이 서 있었다. 동그란 눈과 웃는 입 모양을 한 눈사람이었다. 그 웃는 얼굴을 보고 남자는 잠시 멈춰 섰 다. 눈이 재앙이 되고 눈 때문에 일상이 무너진 곳에 서 있는, 웃는 얼굴의 눈사람은 김새 는 농담 같았다.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 입 모양을 흉내 냈다. 말라붙어 있던 입술이 툭 터져서 피가 찔끔 새어나왔다.
한참 속도를 내고 있는데 삽 끝에 딱딱한 게 또 걸렸다. 시간은 촉박하고 마음은 급한 데 발로 눌러도 삽날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는 일 미터쯤 떨어진 곳에 다시 삽을 꽂았다. 한 삽 떠내고 나자 또 삽이 들어가지 않았다. 생활정보지함이나 자전거가 쓰러 진 게 아니라 공룡이라도 묻혀 있는 것 같았다. (중략)
해가 기울고 주위는 어느새 어둑어 둑해졌다. 이대로 한 시간 정도만 파고 가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남자는 회 사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파고 온 길을 돌아보았다.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다시 돌아가기에도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게다가 남자는 너무 지쳐 있었다.
[논제 분석]
[문항 3]
⑴ 제시문 [마]의 ‘진정한 나’와 제시문 [바]의 ‘참된 자아’에 이르는 길의 차이에 대해 논하시오. [20점]
⑵ 제시문 [바]의 사르트르의 존재에 대한 설명을 바탕으로
제시문 [사]의‘남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서술하시오. [20점]
[출제 의도]
문항 (1)은 제시문 [마]와 [바]의 주요 개념을 비교하여 논하게 함으로써, 제시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각 글의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고 맥락을 고려하며 읽는 독해 능력과, 주어진 자료를 비교 분석하는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출제하였다.
문항 (2)는 제시문 [바]의 핵심적인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제시문 [사]의 작품 속 인물이 처한 상황에 적용하는 문제로, 응시자의 사실적·추론적 독해력과 작품에 대한 비판적 감상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출제하였다.
[문항 해설]
■ 문항 3-⑴
제시문 [마]는 「독서」교과서의 인문 분야 독서 단원에 수록된 글로, 기독교 사상에 바 탕을 둔 교육철학자 손봉호 교수가 마틴 부버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나’와 ‘그’,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 논한 글이다. 제시문 [바]는 2020학년도 고2 전국연합학력 평가에 출제되었던 「사르트르와 실존주의」의 발췌문으로, 실존철학자 사르트르의 ‘존재’에 관한 생각을 담은 지문이다. 두 글은 모두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철학적 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는 한편, [마]의 진정한 나, [바] 의 참된 자아에 이르는 과정에 타자 또는‘너’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상이한 시각의 통찰 을 담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답안을 작성할 때, 두 글에 제시된 주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나’ 또는‘자아’ 와 관련하여 ‘너’ 또는 ‘타자’에 부여된 의미를 파악하며, ‘진정한 나’와 ‘참된 자아’라는 핵심 개념에 이르는 길의 차이를 비교하고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주어진 자료와 상관없이 실존 철학이나 타자 관련 철학 사상에 관한 단편적 지식을 나열한 경우에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게 출제하였다.
■ 문항 3-(2)
제시문 [바]는 2020학년도 고2 전국연합학력평가에 출제되었던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의 발췌문으로,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을 설명하는 글이다. 사르트르 실존주의의 주요 개념 인 ‘즉자 존재’, ‘대자 존재’, ‘대타 존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시문 [사]는 고등 학교 「문학」교과서(미래엔)에 실린 서유미의 소설 「스노우맨」의 발췌문으로, 엄청난 폭설로 도시가 파묻힌 재난 상황 속에서도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을 소외시키는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폭설이 내린 상황에서도 기 계적으로 눈을 파헤치며 회사에 출근하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기계와 같은 비인간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경쟁적인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이 문항에서는 사르트르의 존재에 대한 개념을 비일상적 재난 상황에서도 맹목적으로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남자의 모습에 적용함으로써 인간을 기계화하는 비인간적인 현대사 회의 모순을 살펴볼 수 있다. 이 문항에서는 (바) 글에 드러나 사르트르 실존주의에 대한 세부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고 각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후, 이를 소설 작품에 적용하여 작품 속 인물 및 주제 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글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읽은 내용을 종합하여 실제 작품에 적용·분석함으로써 소설의 주제 의식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시 답안]
■ 문항 3-⑴
제시문 [마]는‘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나’ 가 맺을 수 있는 기본적 관계는 ‘나’와 ‘그것’,‘나’와 ‘너’의 둘뿐인데, ‘나’와 ‘그것’의 관계는 주체와 객체의 차등 관계인 반면,‘나’와 ‘너’의 관계는 주체와 주체의 동격 관계이다. 이에 근거해 볼 때, 객체로서의‘인간’을 이해하는 것과 주체로서의 ‘나’를 이해하는 일은 같을 수 없으며, 진정한 ‘나’에 이르려면 ‘나’와 대등하며 유일한 존재인 ‘너’와의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제시문 [바]에서 사르트르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의식을 가지지 않는 사물 존재인 ‘즉자 존재’, 그리고 자기의식을 가지는 인간 존재인 ‘대자 존재’로 구분하고,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되는 인간을 ‘대타 존재’로 다시 명명하였다. 이때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인간은 타자의 시선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대신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행위를 선택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제시문 [마]와 [바]는 ‘너’ 또는 ‘타자’에 대한 의미 부여에 차이를 보인다. 제시문 [마]의 ‘진정한 나’에 이르기 위해서는 ‘너’라는 타자가 반드시 필요하고 그의 반응이 필수적인 반면, 제시문 [바]의 시각에서 볼 때 타자의 시선과 반응에 좌우되는 대타 존재에 머물지 말고 타자의 시선을 극복하며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갈 때 비로소 ‘참된 자아’에 이를 수 있다.
■ 문항 3-⑵
제시문 [바]의 사르트르는 세계의 모든 존재를 의식의 유무에 따라 ‘사물 존재’와 ‘인간 존재’로 구분하고, 사물 존재를 ‘즉자 존재’, 인간 존재를 ‘대자 존재’로 명명하였다. 그는 즉자 존재는 자기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것인 상태로 남아 있다면, 대자 존재는 자기의식을 지니기에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여 바라볼 수도 있고,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그는 인간 존재는 주체성을 지닌 대자 존재이면서 타인의 시선으로 규정되는 대타 존재이기도 하다고 설명하며, 인간은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타자의 시선을 두려워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 자신의 행 위를 선택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사]의 ‘남자’는 사상 최대의 폭설로 회사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회사 상사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추위와 피로에 지쳤음에도 삽으로 눈을 파헤치며 회사로 향하고 있다. 이때 남자는 부장과 과장의 시선에 의해 회사 내 무능한 직원으로 규정되는 대타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출근을 위해 기계처럼 삽질을 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회사 내 부품으로 객체화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그는 편의점 앞에 서 있는 눈사람의 웃는 입 모양을 자기도 모르게 흉내 내고 있는데, 이는 즉자 존재처럼 취급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폭설과 상관없이 웃고 있는 눈사람의 모습은 재앙 같은 폭설 속에서도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기계적인 삽질을 하는 남자의 모습과 겹쳐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극심한 경쟁 속에서 인간이 사물화되는 현상은 사르트르가 말한 대자 존재 로서의 인간이 즉자 존재, 즉 비인간화됨을 보여주고 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참된 자아 를 찾기 위해서는 타자의 시선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야 한다 고 주장했지만, 이 소설 속 남자는 자신을 물화시키는 현대사회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리하면, 이 소설은 폭설이라는 재앙적 상황에서 사물 화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을 소외시키는 폭력적 현대 문명을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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