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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20세기 독일 철학자 블루멘베르크는 은유에 대한 종래의 철학의 해석을 두 가지로 제시하며, 이로 인해 은유의 중요성이 간과되었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수사적 기법으로서의 은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은유는 명료한 사실에 대한 표현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군더더기나 장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명확한 개념적 인식에 이르지 못한 불완전한 인식과 추측의 표현으로서의 은유이다. 이때 은유는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에 잠정적으로 사용되는 필요악 같은 것이며, 인간의 사유가 발달하여 어떤 대상을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는 투명한 형식을 찾아내면 은유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궁극적으로 철학의 모든 은유가 순수하게 개념적인 용어로 대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간주했다. 블루멘베르크는 전통 철학의 지적대로 은유가 수사적 표현이거나 아직 개념으로 환원되지 못한 잉여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은유 중에는 결코 개념으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형식으로서 철학적 언어의 근본 바탕이 되는 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절대적 은유’라고 명명했다.
블루멘베르크에 따르면 절대적 은유는 개념적 사고에 미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념적 사고의 바탕이 되며, 세계의 본질이나 삶의 지향성 등과 같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궁극적인 질문들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그 질문들은 이성을 통해 인식 가능한 영역을 넘어서므로 규정적 해답을 구할 수 없는 것들인데, 절대적 은유는 현실의 총체성을 묘사하는 이미지를 생성하여 우리가 사는 세계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미지의 세계를 찾아 출항하고, 망망대해에서 난파당하는 등 ‘항해’와 관련된 은유들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을 표현하는 절대적 은유라 할 수 있다. 또한 절대적 은유는 인간이 세계를 대하는 기본자세와 태도를 표현하며 인간 행위의 방식을 설정하는 지침으로 기능한다. 블루멘베르크에 따르면, 인간이 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는 궁극적 영역들이 있는데, 절대적 은유는 여기에 구조를 부여하여 세계에 대한 명백한 형상을 제공함으로써 인간이 세계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세계를 ‘시계’라는 은유로 나타낼 때 세계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시계, 즉 질서 있는 전체가 된다.
절대적 은유와 마찬가지로 신화 역시 개념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사태를 은유를 활용한 이야기로 서술한다는 점에서 블루멘베르크의 은유 이론은 신화 이론으로 연결된다. 그에 따르면,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은 막연한 불안을 구체적 두려움으로 바꿈으로써 세계의 거친 폭력과 혼돈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신들은 만물을 질서에 따라 배치하는 권능을 가진 존재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섭리를 신들의 권능으로 여김으로써 자연이 일정한 질서에 따라 운행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비로소 안도하게 된다. 이런 자기 보호 기능에서 더 나아가 신화는 다양하게 변주되어서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함축하는 서사로 진화한다. 신화의 의미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신화의 전승과 수용 과정에서 역사적 존재인 인간의 문화적 선택에 따라 의미의 선택과 변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 세상은 동명왕(東明王)의 신통하고 이상한 일을 많이 말한다. 비록 어리석은 남녀들까지도 흔히 그 일을 말한다. 나는 일찍이 그 얘기를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공자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았다. 동명왕의 일은 실로 황당하고 기괴하여 우리들이 얘기할 것이 못된다.” 하였다. 뒤에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어 보니 역시 그 일을 실었으나 간략하고 자세하지 못하였으니, 국내의 것은 자세히 하고 외국의 것은 소략히 하려는 뜻인지도 모른다. 지난 계축년(1193, 명종 23) 4월에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얻어 「동명왕본기(東明王本紀)」를 보니 그 신이(神異)한 사적이 세상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더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귀(鬼)나 환(幻)으로만 생각하였는데, 세 번 반복하여 읽어서 점점 그 근원에 들어가니, 환(幻)이 아니고 성(聖)이며, 귀(鬼)가 아니고 신(神)이었다. 하물며 국사(國史)는 사실 그대로 쓴 글이니 어찌 허탄한 것을 전하였으랴. ㉠김부식(金富軾) 공이 국사를 다시 편찬할 때에 자못 그 일을 생략하였으니, 공은 국사는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니 크게 이상한 일은 후세에 보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생략한 것이 아닌가? (중략) 동명왕의 일은 변화의 신이(神異)한 것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고 실로 나라를 창시(創始)한 신기한 사적이니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장차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시를 지어 기록하여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聖人)의 나라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다] A good way to make human-machine interaction more natural would be to develop a better metaphor. A computer metaphor is a familiar object or activity that your computer imitates with its commands, display arrangements, and behavior. The two main metaphors we have today are the desktop and the browser. In the desktop metaphor, the display screen mimics a typical desk; information is kept inside folders, which can be opened, closed, and slipped into other folders. With Web browsing, the metaphor is downtown window shopping; you gaze at various “storefronts,” see one you like, and (click) you enter. Inside, there are more options to browse, you choose another, and again you enter. The power of a good computer metaphor is that it makes a new system you don’t know behave like an old “system” with which you are familiar. This lets you use the new system and get useful results out of it easily, since you don’t have to struggle learning new concepts and commands.
[라] 조선 후기에 이르러 자연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러한 관심은 서양의 근대 과학적 성과를 수용한 결과이다. 자연학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우리의 인식 대상은 자연의 구체적인 성질로서의 ‘이(理)’이다. 이러한 ‘이’는 마음 안에 있지 않고 사물에 있기 때문에 참된 인식을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최한기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아무런 색이 없는 우물물 같아서 본래 그 어떤 관념이나 선험적인 ‘이’가 내재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는 온갖 이치가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다는 맹자와 주희의 언급은 마음이 지닌 사유 작용을 찬미한 것이지 ‘이’가 본래 마음에 갖추어져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는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탐구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최한기의 철학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속에 있는 도덕적 본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객관 세계의 이치를 정확하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참된 인식을 위한 격물치지는 감각 기관을 매개로 객관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객관 세계의 ‘이’에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최한기의 격물치지설은 도덕학의 테두리에 갇혀 있던 자연을 자연학으로 독립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서양에서는 색이 물체의 고유한 성질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빨간 사과가 빨갛게 보이는 것은 그 사과가 빨간색이라는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턴은 광학 이론을 제시하여 이러한 생각을 뒤바꿔 놓았다. 그에 따르면 물체의 색은 물체가 아니라 빛의 특성에 의한 것이며, 특정 물체는 모든 색을 포함하고 있는 빛 중에서 특정한 파장의 빛만을 반사하거나 투과하기 때문에 사람이 그 물체를 볼 때 특정한 색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색채 현상은 객관적 실체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색채 현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본 뉴턴과 달리, 괴테는 색채 현상이 인간의 감각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인간 내면의 세계와 자연은 감각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괴테는 인간의 눈 속에 일종의 빛이 들어 있어서, 내부 혹은 외부로부터 미세한 자극이 주어지면 색채가 촉발된다고 보았다. 그는 선명한 유색(有色)의 종이를 적당한 밝기의 흰색 판지 앞으로 갖다 대었을 때의 사례를 제시한다. 유색의 표면을 어느 정도 응시한 후 눈을 움직이지 않고 그 유색 종이를 치우면 바로 그 자리에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이 생겨난다. 유색 종이가 황색이었다면 청자색이, 주황색이었다면 청색이, 자색이었다면 녹색이 나타난다. 이때 앞의 색을 유도색이라 하고 뒤의 색을 피유도색이라고 한다. 눈은 어둠이 제공되면 밝음을 요구하고, 반대로 밝음이 제공되면 어둠을 요구한다. 이처럼 눈은 한순간이라도 물체에 의해 규정되는 특정 상태에 머물지 않고 주어진 유도색과 대립되는 피유도색을 만들어 낸다.
괴테는 감각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내부와 자연은 서로 분리 불가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그는 적색은 정열과 흥분, 청색은 수축과 차분함 등 각각의 색에는 상징적 의미가 있고, 따라서 색은 감각적이고 도덕적이며 미학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색(紫色)을 위엄을 나타내는 색으로 보고, 녹색에 희망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괴테는 뉴턴이 간과하였던 심리적, 철학적, 미학적 관점에서 색채 현상을 설명하였다.
[바] 장소에 관한 철학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는 유토피아의 개념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헤테로토피아’를 제시하였다. 그는 “우리는 순백의 중립적인 공간 안에서 살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순백의 중립적인 공간은 유토피아를 가리킨다. 푸코에게 유토피아란 현실에서 실재적인 장소를 점유하지 않고 있는, 비현실적이며 균질적인 공간이다. 반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실재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이질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의 예로 푸코는 원시 사회에서 신성시된 장소, 아이들이 다락방 가운데 자신만이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텐트 등을 들면서, 현대 사회에서는 누군가에게 정신 병원, 감옥 등도 일탈을 위한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공간은 기존의 권력 체계에서 벗어나 있고 그것에 반하는 질서를 갖고 있는 ‘반(反)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테로토피아는 낯설고 위험한 곳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는 위안을 주고 해방을 실현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가 현실에 대한 이의 제기를 수행하는 일종의 대항 공간, 현실 전복의 공간이 된다고도 하였다. 푸코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의 질서를 만들고자 하고 현실 전복을 시도한다. 또한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구성하지 않는 사회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그 공간은 현실에서 다수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과 차별화된다고 강조하였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바깥의 공간’이라는 말로도 설명하였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들의 삶의 공간은 조합을 통해 배치되는데 이때의 조합은 기존의 질서나 구조, 권력 안에서 이루어진다. 바깥의 공간은 기존 질서에 의한 공간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양태를 띤다. 푸코는 기존 질서에 입각하여 배치된 공간이지만 현실 어디에도 없는 곳이 유토피아이고,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방식으로 배치된 공간, 기존 질서와 대립적 관계를 맺고 현실 어딘가에 있는 곳이 바로 헤테로토피아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푸코는 유토피아와 헤테로토피아란 각각 현실에 대한 감응과 반감의 상상력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장소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은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을 해석할 때도 적용되는데, 화폭을 현실 대항과 현실 전복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수단,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바깥의 공간으로 다루는 현대 예술가들의 철학적 바탕이 바로 푸코에게 있다.
[사] 문득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단 그런 마음이 들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한 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소리는 금방 사라져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용기 내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도――” 도는 방안에 갇힌 나방처럼 긴 선을 그리며 오래오래 날아다녔다. 나는 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가슴속 어떤 것이 엷게 출렁여 사그라지는 기분이었다. 도는 생각보다 오래 도―― 하고 울었다. 나는 한 음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느낌을 즐기려 눈을 감았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쿵쿵. 주먹으로 네 번이었다. 나는 얼른 피아노 뚜껑을 덮었다. 다시 쿵쿵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주인집 식구들이었다. (중략)
“학생, 혹시 좀 전에 피아노 쳤어?” 나는 천진하게 말했다. “아닌데요.”
주인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친 거 같은데……?” 나는 다시 아니라고 했다. 주인 남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내가 곰팡이 얘길 꺼내자 “지하는 원래 그렇다”고 말한 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중략)
저녁부터 폭우가 내렸다. 언니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는다고 했다. (중략) 나는 만두라면을 먹으며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볼륨을 한껏 높였는데도 배우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리모컨을 잡으니 뭔가 축축한 게 만져졌다. 한참 손바닥을 들여다 본 후에야 그것이 빗물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에서부터 물이 새고 있었다. 이물질이 잔뜩 섞인 새까만 빗물이었다. 그것은 벽지를 더럽히며 창틀 아래로 흘러내렸다. 벽면은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누군가의 얼굴 같았다. (중략)
“언니야?”
웬 그림자 하나가 스윽―― 나타났다. 무서운 얼굴을 한 사내였다. 나는 뒤로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손등 위로 출렁 빗물이 느껴졌다. 사내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후들후들 떨며 “누구세요?” 라고 말했다. (중략) 사내는 나를 노려보다 신발장 옆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더니 신발장에 볼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미영아.......” 언니의 이름이었다. 나는 그가 언니의 예전 애인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조그마한 체구에 순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조금 귀염성 있는 얼굴이기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내에게 다가갔다. (중략)
“아저씨!” 사내는 고꾸라진 뒤, 차가움에 놀라 부르르 떨다 다시 코를 골았다.
“저기요!” 그는 ‘음냐’ 하고 몸을 뒤척였다. 성질이 났지만 그대로 둘 순 없었다. 물은 정강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책장 아래 칸의 책들은 빗물에 퉁퉁 불어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언니가 아직 풀지 못한 영어 문제집도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사내를 옮겨 피아노 의자 위에 누일 수 있었다. 사내는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몸통이 기역 자로 꺾여, 발목은 물에 잠긴 채였다. (중략) 빗물은 어느새 무릎까지 차 있었다. 나는 피아노가 물에 잠겨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대로 두다간 못 쓰게 될 게 분명했다. 순간 ‘쇼바’를 잔뜩 올린 오토바이 한 대가 부르릉―― 가슴을 긁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흙먼지 사이로 수천 개의 만두가 공기 방울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언니의 영어 교재도, 컴퓨터와 활자 디귿도, 아버지의 전화도, 우리의 여름도 모두 하늘 위로 떠올랐다 톡톡 터져버렸다. 나는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깨끗한 건반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반 위에 가만히 손가락을 얹어보았다. 엄지는 도, 검지는 레, 중지와 약지는 미 파. 아무 힘도 주지 않았는데 어떤 음 하나가 긴소리로 우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도――” 도는 긴 소리를 내며 방 안을 날아다녔다. 나는 레를 짚었다. “레――”
사내가 자세를 틀어 기역 자로 눕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편안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나둘 손끝에서 돋아나는 음표들이 눅눅했다. “솔 미 도레 미파솔라솔……” 물에 잠긴 페달에 뭉텅뭉텅 공기 방울이 새어 나왔다. 음은 천천히 날아올라 어우러졌다 사라졌다. “미미 솔 도라 솔……”
사내의 몸에서 만두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빗줄기는 거세졌다 잦아지길 반복하고, 검은 비가 출렁이는 반지하에서 나는 피아노를 치고, 발목이 물에 잠긴 채 그는 어떤 꿈을 꾸는지 웃고 있었다.
1.
⑴ 제시문 [가]를 활용하여, 제시문 [나]의 ‘동명왕의 일’에 대한 ‘㉠김부식’과 ‘㉡나’의 관점을 대비하시오. [20점]
⑵ 제시문 [다]를 한국어로 요약하고, 제시문 [가]의 ‘절대적 은유’와 제시문 [다]의 ‘metaphor’를 비교하시오. [20점]
2.
제시문 [마]의 괴테의 관점에서 제시문 [라]의 최한기의 견해를 비판하시오. [30점]
3.
제시문 [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활용하여, 제시문 [사]의 ‘반지하’ 방의 의미에 대해 서술하시오. [30점]
출처: 이화여자대학교 입학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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