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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를 피하는 이유

by Danao 2018.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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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인사가 만드는 도서 목록의 맹신은 특정한 지식의 '중심화', 

그리고 그 특정한 지식이 아닌 다른 지식의 '종속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강남순, 정의를 위하여)






책을 스스로 읽다보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어떤 추천 목록이 있지 않아도 자연히 찾아 읽게 된다. 또 낯선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그가 인용하는, 그가 생각하는 가치들을 담은 책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텍스트학이 생각나지만 이 이야기는 접어 두자.

어쨌든 ‘△△△의 추천 도서 목록’,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도서 목록’은 영 매력적이지 않다. 유명 인사의 추천 도서를 수용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독서에 지름길이 있다고 믿게 되면서 타자의 판단이 나의 지식 세계를 구성하게 된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남이 좋다는 책이라고 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책을 나도 좋아하게 될 확률은 높다. 그러나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서는 나와 책과의 관계 맺기이다.

독서에 지름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안타까운 말이지만, 독서에는 지름길이 없다. 내가 그 세계와 부딪혀야 한다. 이러한 읽기는 ‘심층적 읽기’라고 하는데, 심층적 읽기는 양으로 측정 불가능하다. 하나의 글을 성찰하고 반복하여 읽는 방식의 질적 독서는 경험해 본 자만이 아는 책읽는 기쁨이다.

(나는 양적 읽기가 읽기의 전형으로 대체되거나, 의미 없는 감정 문장이 요란한 관형어에 뒤덮인 책 읽기만 피한다면 책 읽기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키치 문학과 페이퍼 형태의 책이 주는 효용은 있지만, 그 효용이 책과의 거리감 줄이기라면 거기까지만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 효용이 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이쯤에서 책 읽기가 낯선 이들을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 또는 주변에 책 읽기를 많이 또 다양하게 하는 사람으로부터 1차적 추천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들로부터 받은 책 목록을 들고 서점(또는 도서관)에 가라. 그리고 책의 서문을 읽어라.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인지 그렇지 않은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목차를 참고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추천 목록을 들고 갔는데도, 원하는 내용을 찾지 못했다면, 내가 읽어보고 싶은 분야로 가서 이런 저런 책을 펴 본다. 미리 검색으로 책들을 알아보고 가는 것도 좋지만, 무수한 책들 가운데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굉장하다. ‘정의’또는 ‘차별’이라는 키워드를 담은 인문 코너에 가서 열 권, 이삼십 권 뒤적이다보면 분명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오고야 만다.

마지막으로 다시금 권하고 싶은 말은 추천 도서 목록을 피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책의 위계주의를 탈피하기 위함이다. 다른 사람의 관점과 경험에서 중요한 책이라고 해서 그 평가에 보편성을 적용할 수 없다. 남은 좋게 읽어도 나한테는 별로인 책은 생각보다 아주 많다.

그렇게 책을 읽고 나서, 작가가 쓴 책이 마음에 든다면 작가의 또 다른 책을 찾아 읽어라. 또는 작가가 인용한 책을 메모해 두었다가 관심 가는 분야라면 다시 서점에 가서 읽어 본다. 그런 식으로 가지치기를 하다보면 아직 내가 읽지 못한, 읽고 싶은, 읽어야 하는 책은 무수히 많아진다.

어차피 책은 자기 삶의 여정, 성향, 갈망, 호기심, 지적 필요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내가 부딪혀 봐야 알게 되는 세계이다. 자신의 앎의 세계를 타자가 생각해 놓은 대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책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가치, 개념도 그러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책으로부터 내면세계를 풍성하게 가꿀 수 있는 영양분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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