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아래는 나의 인생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현빈의 나래이션이다.
현빈의 목소리로 처음 알게 된 시
극중 현빈의 나이쯤 되자 이 시를 더욱 잘 알겠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건지.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참 좋은 시였는데
다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 한구절씩만 생각이 난다.
마지막은 이렇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이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거.
내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나는 저 아이를 버렸는데.
그럼 지켜진 내 자존심은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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