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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문정희, 바퀴벌레 한 마리도 똑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by Danao 201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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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집단 귀향을 하여 온 도시가
텅 빈 명절날 저녁
불효 자식으로 혼자 남아 TV를 보다 말고
위험한 문구 하나를 써본다
바퀴벌레 한 마리도 똑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한꺼번에 밀려드는 광적 애향심으로
몸살을 앓는 고속도로
출가도 가출도 못한 착한 아들과 딸들이
똑같은 안경을 쓰고 똑같은 선물을 사들고
모천의 연어들처럼 한꺼번에
고향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해가 뜨면 앞산과 뒷산에다
시큰한 음식들을 차려놓고
일제히 절을 하리라
이 심각한 명절날
방화범과 광녀와 불효 자식만 남아
뜻밖에 조용한 서울에서
나는 진실로 가고 싶은 고향이 없어
슬픈 실향민
오늘 나의 고독은
진정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진정 사랑할 데가 없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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