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김상욱 물리학자의 강연을 보고 왔다.
강연을 보는 동안에는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메모조차 잘 하지 않았는데,
후기를 남기려고 하다보니 메모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강연 내용도 많이 빠지고 순서도 다를 수 있겠지만 일부나마 기록해두기로 한다.
"빛은 어둠의 부재다."
강의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슬라이드에서 마주한 문장이다.
우리는 쉽게 어둠이 빛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디폴트 값을 어둠이 아닌 빛으로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우주의 디폴트 값은 어둠이다. 어둠이 빼곡하고, 가끔 빛이 있을 뿐이다.
우주의 실체는 '어둠'이라 말할 수 있다.
태양이 사과라면, 지구는 먼지만한 크기이고, 해왕성은 대만쯤 위치한다는 비유는
어둠으로 가득찬 우주의 모습을 대변한다.
우주에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는 말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어둠이 없는 곳에 가끔 빛이 있고, 어둠이 없는 곳에 가끔 태양이 있다.
우리가 보기에 태양과 다른 별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청중들은 항성, 행성 등 답변을 쏟았고 답은 '거리'였다.
태양은 지구 가까이 있는 별이고, 별은 아주 멀리 있는 또 다른 태양이다.
(별의 갯수는 망원경의 성능이 좋아지면 늘어난다.)
지금 우리가 지구에서 바라보는 별의 모습은 지금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리만큼의 시간 전에 빛나던 모습이다.
만일 4천 광년 떨어진 별의 모습을 본다면, 그 별은 지금 시점에서는 사라져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밤하늘에는 우주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더 멀리 보는 별은 더 과거의 별의 모습이며, 그 끝에는 빅뱅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빅뱅을 관찰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우주의 시작점이 있는가?"
이어서 칸트와 아인슈타인의 우주의 시작점에 관한 이야기이다.
칸트는 그의 책 <순수이성비판>에서 우주의 시작점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인간의 이성으로 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런 그의 답변에는 시간과 공간을 분리해 시간은 무한정하다는 전제가 있었다.
이에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시작했다는 가정으로 저 물음에 답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시공간은 변화하며, 시작점이 존재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주의 빅뱅이 점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스티븐 호킹이다.)
물리학자들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닮아있는 빅뱅이론을 거부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실험을 거칠 수록 더욱 명확한 물리학적 증거를 찾게 되었다.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선은? 점들의 집합
면은? 선들의 집합
부피는? 면의 집합
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작 우리는 점 자체의 정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기하학으로 유명한 유클리드는 점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점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그의 저서 <기하학 원론>은 개념을 정의하고, 공리를 쓰고, 논리로 이끌어 가는 방식으로 쓰였다.
이를 물리학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수학은 동어반복이라고 하는데,
우주를 읽는 언어인 수학은 원리적으로 틀릴 수 없게 된다. (논리에 입각한 동어반복이기 때문)
그렇지만 이렇게 어려운 기하학을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밖에 (나를 포함)
그런데 수학자로 알려지기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데카르트가
좌표계를 (x,y,z)를 고안해냄으로써 점을 숫자화하고 공간을 수학으로 나타낼 수 있게 하였다.
세상은 점으로 나타나 있다는 물리학자들의 세계관은
한 미술 작품을 통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Un dimanche après-midi à l'Île de la Grande Jatte) 조르주피에르 쇠라(Georges-Pierre Seurat)
단순 점묘화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그림이 말하는 물리학적 시선은 우리의 몸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점은 세상을 이루고 있기에,
우리의 몸을 이루는 물질이 결국 우주의 물질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더이상 쪼갤 수 없는 물리학적 단위로 세상을 바라보면 저렇다.
어렵고 멀게 만 느껴지는 물리학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위의 그림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물질적 증거가 없다면 과학자의 답은 '모른다'이다."
근대 과학자의 설정에 관한 시비가 여전하다고 한다. (알쓸신잡 시즌3 참고)
그래도 많은 물리학자들의 합의로 갈릴레오부터 근대 과학의 시작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갈릴레오는 물질적 증거를 찾기 위한 가속도 실험(자신의 맥박 이용)을 해 낸다.
이후 중력의 존재는 뉴턴을 통해 밝혀진다.
뉴턴은 지상에서의 운동과 하늘이 운동을 합쳐내는데,
갈릴레오가 자연의 언어는 수학이라고 말하고, 뉴턴은 수학으로 자연의 운동 법칙을 이해한다.
"관계는 힘이다."
뉴턴?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힘의 공식 F=ma이다.
그런데 이 힘이라는 것은 '관계'와 관련있다.
우주에는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강력, 약력, 중력, 전자기력
이 중 중력과 전자기력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중력과 전자기력의 공식의 식이 같다.
여기서 물체의 관계가 나타나는데,
결국 중력이라는 것도, 전자기력이라는 것도
두 물체 관계 없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사과는 떨어지는데 달은 왜 안 떨어질까?"
위는 뉴턴의 질문이다. 떨어지는 사과에서 출발한 뉴턴의 생각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발전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달도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인공위성도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고,
지구도 태양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포물선 운동과 관련있는데, 전공자가 아닌 교양과학 수준도 버거운 내가
다시 설명하기에 조금 한계가 있다. 그래도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하자면
지구의 중력이 달의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달이 접선 방향으로 날아가려고 하는 것을 지구의 중력이 끌어당김으로써 원형 궤도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달의 타원궤도를 돌 때 생겨나는 원심력과 지구가 달을 잡아당기는 중력이 같은 것이다.
( 덧붙여 태양으로 떨어지는 우리가 떨어진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비해 우리가 너무 작은 존재이기도 하겠지만,
떨어지는 동안에는 중력을 느낄 수 없는 무중력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지구를 공전하는 물체 안에 있는 우주인들이
무중력 상태에 놓이는 것 역시 지구를 향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게 속에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사람들이 다른 생물체와 구별되는 지점은 아마도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종이화폐에
우리는 가치를 넣고, 그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기까지 한다.
또 우리는 지구에서 함께 살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해 국가를 만들고,
세계 연합을 만들고 살아간다.
이 모두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생겨나는 사회 현상들이다.
그런 상상의 체계 속에서 존재하는지 없는지 물리학적으로 관찰하기 어려운
행복을 누리며 사는 우리들.
강연을 마칠 때쯤 생겨난 의문은 바로 다음이다.
그런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물리학적 세계관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단순히 행복이라는 상상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란 말인가.
행복이라는 상상 속에 살아가는 것과 물리학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의 상관관계란 무엇이란 말인가.
왜 우리는 이해하고자 하는가.
그러다 내가 생각해낸 나름의 답은 이것이다.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는 삶 속에서
적절한 의미를 찾지 못해 결국 좌절하는 경험 속에서
우주는 우주가 의미 없이 반복하는 별의 생성과 폭발, 공전과 자전 속에서
우주도 이렇게 의미 없이 그냥 존재하듯이
먼지만한 우리도 의미 없이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위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거창한 의미가 없어도,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도 괜찮다는 사실을,
그러니 너무 자만할 필요도, 너무 위축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우주가 알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저자 자신이 유명해진 이유에 대해 청중에게 설명하며 띄운 사진
강연 당일 시점을 기준으로 알쓸신잡 시즌3 촬영은 이미 마친 이후라 했고, 그 다음날 마지막회 방송을 앞두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여 찍어두었다. (ㅋㅋ)
Q&A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질문하는 사람도,
나름의 생각을 친절히 답변해주는 사람도,
그것들을 경청하는 사람도 보기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강연을 더 자주 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전달하는 간결하고, 축약된 저자의 생각을 듣는 것도 좋지만,
같은 공간에서 때때로 저자와 눈을 맞추며,
그 호흡에 맞춰 저자의 생각을 읽어나가는
현장감이 주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unit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unit들이 머리를 맞대고
또 몸을 맞대고 살아가는 지구가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었다.
#교보문고 #365인생학교 #김상욱 #떨림과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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