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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김양숙, 삼월에 걸려 넘어지다

by Danao 2019.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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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한 예술가는 나치정권에 희생된 사람들이 살았던 장소의 멀쩡한 길바닥
을 파내어 희생된 이들의 이름과 희생된 날짜가 새겨진 동판을 박아 놓아 걸림돌
을 만들었다는데
그리하여 조상들이 저지른 비극적 역사를 숨기기보다 부끄러워하며 과거의 잘못
을 일상처럼 마주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며 반성한다는데

그렇다
너희들은 침략한 것이다
아름답게 뻗어 내린 백두대간의 등줄기에 쇠못 박으며 능욕하였다
굽이굽이 흐르는 성스러운 물줄기를 강점하여 피로 더럽혔다 그러나
어디에도 슈돌퍼슈타인* 같은 것은 없고
목숨을 내 놓고, 손가락을 자르고 맹세하며, 끓는 피로 지켜낸 이 나라
오천년의 역사를 간사한 혀로 왜곡하느냐

등줄기 곧추세운 백두대간이 뻗어나간 만주벌판
동해라는 이름으로 품어 안은 독도
남쪽을 지키는 이어도 모두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내 수족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 톨의 흙 한 방울의 물도 가슴에 낱낱이 새기고
날마다 넘보는 승냥이의 눈빛에서 지켜내어
후대에게 물려 줘야 할 이유인 것이다

상처투성이의 역사에 걸려 넘어져도
무릎보다 먼저 일어서는 정신을 가진 족속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다만 캐리어를 끌고 현해탄을 건너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몸을 던져 나라 지켜낸 이들 앞에서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슴에 걸림돌 하나 만들고 삼월이면 한 번씩 걸려 넘어지는


*슈톨퍼슈타인(stolper stein) (걸려 넘어지다stopern) + 돌(stein) 합성어 : 독일을 길바닥
을 파내어 도드라지게 설치된 동판 독일은 물론 폴란드, 헝가리 등 나치에게 희생된 사람이
살았던 장소에 설치된 추모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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