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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그해 봄에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2019. 1. 2.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가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2019. 1. 1.
심보선, 이상하게 말하기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손목시계 위의 시간을 읽는다 분침과 시침 사이에 펼쳐진 고요와 고요 아래 째깍거리는 소요를 헤아린다 빛과 어둠이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지는 오후 자라나는 애처럼 죽어가는 새처럼 나는 이상하게 말한다 나는 산책에서 상념을 지우고 길가의 낙엽더미에 왼손을 묻었다 내가 죽기 전에 미리 죽은 손 이라 말한다면 이상하겠지 내가 그녀에게 입 맞췄을 때 그녀의 머리는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의 입이 내 입안에 향기 좋은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이 신기한 계절로 흐르나 보다 공원 벤치에 홀로 앉아 이상한 말들을 중얼대는 오후다 몇 시인가 시계를 들여다보니 고요와 소요가 정확히 반으로 나뉘는 시간이다 2018. 12. 31.
박재삼, 아득하면 되리라 해와 달, 별까지의거리 말인가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나의 거리도자로 재지 못할 바엔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냉수사발 안에 떠서어른어른 비쳐 오는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시방 갈증 때문에마실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2018. 12. 30.
JAJU 초음파 가습기 (LED 조명으로 포근한 초음파 가습기) ​유난히 건조한 겨울이다. 집이 너무 건조해서 목이 계속 칼칼한가 싶어서 빨래도 널곤 했지만 매일 빨래하는 것은 역시나 무리 가습기 종류도 여러가지이고, 너무 큰 크기는 부담스럽고 (놓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서) 작게 침대 맡에서 활용할 가습기를 구매했다. JAJU 19900원이다. 이마트 내 자주 매장 또는 스타필드에 입점한 자주 매장, 온라인에서 판매한다. 색상은 검은색과 흰색 ​ 자연주의의 줄임말 자주. 상품을 구매하고나면 깔끔한 종이 봉투에 담아주신다. ​ ​ ​ 크기가 크지 않아서 겉 박스에 상품 관련 정보는 거의 다 적혀 있다. 제품 크기 : 7 x 7 x 16 냉난방 면적 (5평) ​ 구성품은 위와 같다. 가습기, USB 전원 케이블, 리필 필터 1개. 사용설명서 (참고; 필터는 하나는 이미 .. 2018. 12. 29.
[분당] 찌마기 (본점) - 맛있는 녀석들도 다녀간 조개찜 맛집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연말뜨끈한 국물이 절로 생각난다. 해물이 들어간 국물을 찾다가예전부터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미처 가보지 못했던분당의 조개찜 맛집으로 핫한 '찌마기'에 방문했다.​ 가게 앞에 주차가 가능하나 네 대 정도밖에 주차가 안 된다.근처 골목길에 주차해야 한다. ​ 일요일은 휴무라니 참고!입소문으로 번진 맛집이라 근처에 다른 지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오늘 방문한 곳은 정자동 본점 ​ 자리에 앉으면 기본 상차림이 나온다.계란은 인당 1개씩 나온다.(날계란이니 주의!) ​ 조개찜, 가리비찜, 제철을 맞은 석화찜이 있는데조개찜 소(2인)에 도전! 오후 5시 좀 넘은 시간인데도이미 좌석이 꽤 찼었다. 연말이고,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양쪽 두 구멍 사이로 김이 폴폴 .. 2018. 12. 29.
박준,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 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그러고는 바쁜 걸음으로 어느 네거리를 지나 한 시절 제가 좋아한 여선배의 입속에도 머물다가 마른 저수지와 강을 건너 흙빛 선연한 남쪽 땅으로 가더군요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땅 황토라 하면 알 굵은 육쪽마늘이며 편지지지처럼 잎이 희고 넓은 겨울 배추를 자라게 하는 곳이지요 아리고 맵고 순하고 여린 것들을 불평 하나 없이 안아주는 곳 말입니다해서 그쯤 가면 사람의 울음이나 사람의 서러움이나 사람의 분노나 사람의 슬픔 같은 것들을 계속 사람의 가슴에 묻어두기가 무안해졌던 것이었는데요땅 끝, 당신을 처음 만난 그곳으로 제가 자꾸 무엇들을 보내고 싶은 까닭입니다 2018. 12. 29.
“철(Fe)생일을 축하합니다.” ​“철(Fe)생일을 축하합니다.” 원소기호 26번인 철(Fe)은 지구에서 가장 많은 금속 광물이다. 사용하는 금속의 90%이상을 차지하며, 생활을 지탱하는 중심적 역할을 하는 금속 원소 철(Fe). 한마디로 철은 인류 문명의 핵심적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 나이가 철(Fe)의 번호를 지나고 있으니 이쯤에서 삶의 중심적 역할을 할지도 모를 지금을 살펴본다. 철의 나이에는 본능적으로 앞으로 삶을 지탱할만한 중심축을 마련해야 할 것만 같은 부채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미 중심축을 마련했는지, 아님 마련하는 과정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쉽게 답을 할 수가 없다. 좀전까지도 나는 여유가 없었다. 이따금 물리적 시간은 있었을지라도 심리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난 여행에서도 돌.. 2018. 12. 28.
정호승, 모두 드리리 그대의 밥그릇에 내 마음의 첫눈을 담아 드리리그대의 국그릇에 내 마음의 해골을 담아 드리리나를 찔러 죽이고 강가에 버렸던 피묻은 칼 한 자루강물에 씻어 다시 그대의 손아귀에 쥐어 드리리아직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지아직도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지미나리 다듬듯 내 마음의 뼈다귀들을 다듬어그대의 차디찬 술잔 곁에 놓아 드리리마지막 남은 한 방울 눈물까지도말라버린 나의 검은 혓바닥까지도그대의 식탁 위에 토막토막 잘라 드리리 2018. 12. 28.